해외여행

이 사진 한 장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任演(임연) 2017. 7. 25. 19:08

    이 사진 한 장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 이 사진을 보니 떠날 수밖에 없었다. 궁금해서
"갑시다, 스리랑카." 함께 여행을 다니는 건축계 인사에게서 메일이 왔다.  
스리랑카?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니 당연히 가고는 싶었다. 
그런데 꼭 가야하는 걸까, 고민스러웠다.
갈등하며 첨부된 자료를 보는데, 이 사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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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를 지배했던 고대 왕조의 도시, 하늘에 떠있는 성, 시기리야였다.

광활한 밀림 평원 속에 갑자기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그리고 그 위에 지은

궁전. 사진으로 보니 실로 멋졌다. 말이 필요없어 보였다. 
그래서 사진 자료들을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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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졌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저 절벽 위에 건물터가 있는 것을 보니 저 위로

올라갔다는 이야기. 

그런데 어떻게? 그리고, 도대체 왜 저런 곳에?  
시기리야란 저 곳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바로 답메일을 보냈다. 

"갑시다, 스리랑카."  


# "잠깐 창밖을 보십시오. 저기가 시기리얍니다." 
스리랑카에서 두번째 날, 호텔을 떠나 어느 정도 달리던 중간에

가이드가 창밖에 시기리야를 가리켰다.  

울울창창한 열대의 숲 위로 바위산이 솟아올라있었다.   _1040646.JPG

우리나라 마이산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굵고 높게 우뚝 솟았으되,

그 위는 평평했다. 과연 묘한 산이었다. 
'저 산이 성채란 말이지.' 이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니 더욱 궁금해졌다. 
그리고 얼마 더 지나 버스는 시기리야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바위 성채까지는 고대 왕조가 꾸민 정원이 펼쳐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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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테라스의 정원을 지나 산을 향해 가는 길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이제 건물은 사라지고 터와 흔적만 남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1500년 넘는 오래된 정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성채로 가는 정원길은 성채 못잖게 그윽한 분위기가 좋았다.

위에서 보면 이런 모습이다. 자료 사진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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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시기리야의 바위는 코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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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성채는 5세기께, 싱할라왕조의 카샤파 1세란 왕이 지었다. 
시기리야란 이름은 `사자 바위'란 뜻. 사자의 모습을 한 저 높은 절벽 위에

왕은 굳이 궁전을 올려세웠다. 

해발 370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사방이 낭떠러지이고, 주변에 아무런 높은
봉우리가 없어 그야말로 전망대같은 궁전이 탄생했다.
 
바라 보면서도 궁금했다. 저렇게 깎아지른 절벽을 올라가는 궁전이라니.

궁금함과 진입부의 아름다운 정원의 흥취가 묘하게 섞이면서

성을 향해 걸어갔고, 사자의 성은 점점 더 나를 압도하며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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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긴 평지 정원을 지나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기리야의 유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석 암반에 다듬은 돌, 그리고 벽돌이 섞이면서 만들어내는 세월의 풍경이

매력적이었다. 습한 기후 때문에 벽돌에는 연두색 이끼들이 가득했다.

돌과 이끼가 어울리는 모습, 벽돌이 만들어내는 패턴은 언제나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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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바로 벽처럼 오르막 길이 시작됐다. 기암괴석들 사이로 난

계단길 위로 시기리야가 있다. # 계단, 또 계단 그리고 그 위에 펼쳐지는

광경들 계속 이어지지만 생각보다 전혀 힘들지는 않았다.

기대감이 컸고, 주변으로 보이는 모습들이 멋졌던 탓이었다.
빽빽한 나무 숲 사이로 떨어지는 빛, 그리고 정성껏 쌓은 건축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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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계속 지그재그로 커브를 틀며 위로, 위로 향한다.

갑자기 도중 나타나는 거대한 바위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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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궁둥짝을 닮은 저 쌍바위 사이를 지나니 본격적인 시기리야의 입구가 시작된다.

자연 지형에 맞게 낸 길이었겠지만, 궁금증을 계속 유발시키도록 연출한 듯

시기리야로 가는 길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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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낀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드디어 시기리야의 거대한 사자봉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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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것이었구나. 
실제로 보니 실감이 났다. 자연이 만들어낸 스펙터클이

눈을 압도해왔다.  

앞서 가던 이들은 아슬아슬한 철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오른쪽 가장자리로 사람들이 보인다.  

그 난간 다음에는 갈색 벽이 이어진다.  

벽을 지나면 다시 그 위로 보이는 수직 나선형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아직 저 아슬아슬한 계단을 오르지도 않았건만 벌써 아찔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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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드디어 바위 절벽이다. 직접 마주보니 더욱 아찔했다.  

이런데다 길을 내서 꼭대기에 궁전을 짓다니,

이거 제대로 미친거 아냐? 란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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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도 나선형 계단을 오를 차례. 저 계단 위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바로 이 시기리야 최고의 보물이 있다. 그 보물이란, 고대의 그림이다.

바위산 암벽에 고대인이 그린 프레스코화다. 아름다운 여인을 그린 미인도인데,

1500년 전의 그림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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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벽 중간에 움푹 패인 공간이 나오고, 그 안에 그림 속 여인 22명이 남아있다.

한때 그림은 500여명에 이르렀지만 지워지고, 이들만이 남았다고 한다.

1500년전 그림인데 얼마 전에 그린 듯 생생한 것, 

이게 시기리야 프레스코화의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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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지금껏 생생하게 남아있을수있는 까닭은 그림을 그리는 단계가 무척

복잡하고 과학적이었기 때문이다. 먼저바위벽에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판을 만든다. 바위 표면에 섬유질을 섞은 점토를 바르고, 그 위에 석회와

모래를 섞어 다시 바른다. 그리고 그 위에 또다시 꿀을 섞은 석회로 매끈하게 덮는다.

이런 3단계를 거쳐야 그림판이 완성된다. 
 
그 다음에는 물감을 만들 차례. 각종 식물과 꽃, 잎, 나무 즙을 섞어 안료를 만든다.

이런 정성 덕분에  그림은 1500년 세월을 살아남아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추앙받고 있다. 벽에 매달려 그림을 보았으면, 다시 정상으로 갈 차례. 뱅글뱅글

나선형 계단을 다시 내려와 절벽 난간길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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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중간에서 내려다보는 평원의 모습은 장관이다.

이 평원 가운데 솟아오른 이 붉은 편마암 산이 더욱 신기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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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입구 정원이 어느새 까마득하게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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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만들어낸 모습을 잠시 감상한 뒤, 위로 향한다.

정상까지는 아직 절반도 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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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잠시 철제 난간 대신 제대로 만든 길이어서 조금 나은 편.

그러나 이것도 옛날 사람들에 견주면 호강하며 오르는 길이다.

원래 이 바위산 계단은 모두 대나무였다고 한다. 얼마나 아슬아슬했을까.

지금의 철제 계단은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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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 길을 따라 졸졸졸 올라가면, 드디어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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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바위 덩어리 아래로 거대한 사자 발톱이 보인다. 저 위로 올라가면 사자의

입에 해당하는 꼭대기 궁전터다. 그리고 계단의 각도는 더욱 아슬아슬하게만 보인다. 여기서부터 다시 저 위로 올라가면 진짜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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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그늘에 앉아 쏟아지는 땀을 잠시 식히며 앞으로 올라갈 계단을 바라본다. 

사람이란 참 지독한 존재들이란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올라가는 우리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계단을 만든 이들은 어떠했을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다치고

죽었을까.  이제 얼마 안남았다. 위를 올려다본다.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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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위치가 높아질수록 전망도 더 시원해진다. 덥디 더운 스리랑카의 풍경. 

이 더운 곳에서 이 높은 성을 짓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다시 한번 실감한다. 

올라가는 길을 위에서 찍은 항공사진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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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로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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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빨리 정상에 다다른다. 이제 거의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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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정말 정상이다. 갑자기 넓은 평지다. 궁궐은 사라졌고, 터는 의구하다.

한때 500명의 궁녀를 거느리고 살았던 왕가의 자리다.

건물이 사라져서 더욱 세월을 느끼게 만드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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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산들바람에 몸을 식히며, 시야 전체로 펼쳐지는 푸른 숲의 바다를 본다.

신선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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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오른 방문객들은 모두 감탄하며 저마다 편한 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자연을 응시한다. 몇 시간이고, 하루 종일이고 앉아있고만 싶어진다.

왕실만 감상하던 풍경은 이제 모두의 것이다. 

 

# 왕은 미쳤던 것일까? 이런 곳에 성을 짓다니? 시기리야를 보면 누구나

이곳을 떠올릴 것이다. 이스라엘의 저 유명한 유적지, 마사다 요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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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숲이 아니라 건조한 황야란 점만 빼면 마사다와 시기리야는 꼭 닮았다. 

평원 위로 홀로 솟은 천혜의 요새, 난공불락의 공중 도시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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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 마사다와 이 시기리야는 다르다.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간 이유가. 

마사다는 전쟁이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택한 곳이었다. 서기 70년 경,

유대인들은 점점 세력을 넓히는 로마에 결사항전을 해야 했다.

그래서 해발 430여미터인 저 절벽 위 요새로 올라가 로마제국의 대군에 저항했다.

특별한 지형 덕분에 세계 최강 로마군도 저 요새는 쉽게 함락하지 못했다.

물과 곡식을 잔뜩 마련한 저항군들은 무려 2년 넘게 저 곳에서 로마군에

포위된 채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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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로마는 집요했다. 아예 토목공사에 착수했다.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직접 만들어 공격에 나섰다.  

그토록 치열하게 버텼건만 마사다의 요새는 결국 함락 된다.

그리고 함락 직전, 성채 안에 있던 900여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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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샤파 왕이 시기리야를 지었던 것은 침략군에 맞서는 특별한 요새로서의

마사다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권력을 위해서는 늘 골육상쟁이 벌어지는 법.

그는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운명이란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가 걱정했던대로 

망명했던 동생은 10여년 뒤 마침내 세력을 규합해 형에게 복수를 하러 쳐들어온다.

요새에 있기만해도 버틸 수 있었겠지만 카샤파는 분노에 불타 직접 동생을

물리치러 전장에 나선다. 그리고 전세가 위기에 빠져 홀로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자신을 죽이러 오는 동생의 군대를 앞에 두고 왕은 단검으로 스스로 목을 찔러

목숨을 끊었다. 카샤파가 죽고 난 뒤 시기리야 요새는 다시 왕실에서 수도승의

수도처로 되돌아갔다. 허망하고 부질없는 운명의 요새였다.

그 역사는 겨우 20년을 채우지 못했을 정도로 짧았다. 

그리고 점점 잊혀진 곳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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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저 오녀산성에서 개국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37년, 북부여 왕자 주몽은 이 곳에 성을 쌓고 

고구려를 세웠다. 그러니 저 성은 고구려 개국도성이었을 것이다. 

주몽은, 그리고 그의 새 나라 고구려 사람들은 왕국을 열며 영원한 제국을

꿈꿨을 것이다. 그래서 절대 적들이 정복못할 저 천연의 요새를 골랐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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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상은 소통하고 열려야 오히려 더 번영하는 법. 결국 고구려는 저 안에만

있어서는 세상의 진정한 지배자가 되지 못함을 깨달았던 모양이다.

 

사진 한 장에 반해 간 저 열대의 남쪽나라 시기리야는 문득

고구려를, 역사를, 종교와 전쟁과 자연을 새삼 생각해보는 계기였다.

평소 쉽게 생각할 일 없는 이런 근본적이고 거대한 개념을 마주치는 것, 

그게 여행의 즐거움일 것이다. 

그러나 부작용도 컸다시기리야에 간 탓에 

아직 가보지 못한 마사다와, 오녀산성을 더욱 갈망하게 됐다. 


 받은 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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