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순간들

시민 공원 환구단

任演(임연) 2013. 4. 20. 17:41

사월에 다시 찾은 아픈역사의 환구단

봄이 무르익으면서 여기저기 꽃소식이 전해온다.
특히나 따뜻한 남녘에선 꽃들의 축제속에서 사람들의 새봄맞이 환희로 들떠 있는 날에
소공동 조선호텔 안쪽에 위치한 환구단 시민공원을 다시 찾게 되었다.
시민시민공원
지난번엔 공사중으로 출입을 금지했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을 못해 시민 공
대충 줌을 당겨 모습들을 담고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되돌려야만 했다.공사가 다 마무리 되어 새 봄과 함께 새롭게 단장한 환구단 시민공원은  단아함자체로 도심


계단으로 오르는 입구 좌측에 시설 된
인공폭포 위엔 노란 봄이 어느사이 내려 앉아 있었다.
봄은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환구단 시민공원에도 어김없이 내려 앉아
찾아 오는 사람들에게 노란물빛 화사한 미소로 반긴다.

노란 개나리꽃아, 안녕?
춥고 지루한 긴 겨울을 묵묵히 잘 참고 견뎌내면서
이렇게 예쁘고 화사한 꽃을 틔워 내려 앉은 꽃, 너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서울시청앞 시민 잔디광장 앞에 위치한 환구단 시민공원 정문이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시청앞 하차해서 6번출구로 나와
잔디광장을 가로 질러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정문이 나온다.
지하철 시청역에서 내려 1번 출구를 찾으려니 출구가 보이지 않아
오늘은 물어물어 그렇게 찾아 왔다.


환구단시민공원에 대해서 인터넷 펌




이 사진은 옛 철도호텔 당시 환구단 정문 모습.


1967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건립 때
강북구 우이동으로 옮겨진 환구단 정문이 호텔 옆 시민공원으로 이전된다.

서울시는 이달 중 우이동의 환구단 정문을 해체한 뒤 오는 7월까지
조선호텔 옆 시유지인 시민공원으로 옮겨 복원하기로 했다고 19일 밝혔다.

환구단은
1897년 고종이 하늘에 제의를 지내고 황제 즉위식 등을 거행하기 위해 세운
건물로, 현재의 서울광장을 사이에 두고 덕수궁과 마주 보는 자리에 설치됐다.
그러나 일제가 1913년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철도호텔을 세웠다.

이어 같은 자리에
1967년 조선호텔이 재건축되면서
신주를 봉안하던 8각 황궁우 건물을 제외한 다른 시설들은 모두 철거됐다.
이때 철거돼 행방을 알 수 없었던 환구단 정문은 40년 만인 2007년
강북구 우이동에서 옛 그린파크 호텔 출입문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호텔 옆 시유지인 시민공원으로 옮겨 복원한 후 환구단 정문조감도(2009.2.19)

시는 환구단 정문의 본래 위치가 조선호텔 정문 앞 도로의 가운데 지점인 점을
고려해 인근의 몇 곳을 이전.복원지로 검토한 끝에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시유지인 환구단시민공원으로 복원지를 정했다.

환구단 시민공원은 면적이 1천184㎡로,
2000년 10월 개장된 이래 주변 직장인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2009-02-19 (서울=연합뉴스) 문성규 기자


입구에 있는 환구단 시민공원 안내해설을 이곳에 옮겨 적는다.


환구단 시민 광장 (圜丘壇 市民 廣場)


사적 제157호
환구단(圜丘壇) 또는 환단(圜壇) 이라고도 한다.
광무(光武)원년(元年,1897) 10월 고종 황제의 즉위를 앞두고 남별궁터에
환구단을 쌓았다. 10월11일 고종이 백관을 거느리고 환구단에 나아가 하늘에
제사를 지낸 후 황제에 즉위했다.
일제(日帝)는 1911년 2월에 환구단의 건물과 땅을 총독부 소관으로 한다음,
1914년 환구단을 헐고 조선 총독부 철도호텔(조선호텔)을 지었다.
지금은 단(壇)의 북쪽 모퉁이에 위치했던 팔각정 형태의 황궁우(皇穹宇)만이 남아 있다.

이 광장은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환구단이 인접한 곳으로,
잊혀져 가는 우리의 문화재를 시민들이 찾아 볼 수 있게 하여
역사와 전통의 향기를 다시 한번 음미할 수 있는 열린 쉼터로 조성하였습니다.
2000.10.28.서울특별시장




황궁우로 들어가는 석조대문(무지개 삼문)이다.
공사중으로 굳게 닫혀 있었던 석조대문이 활짝 열려 있어
중앙대문사이로 안쪽에 자리한 황궁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황궁우로 들어가는 문 앞 계단의 답도를 보면 선명하게 2마리의 용이 그려져있다.
답도에 용을 새길 수 있는 것은 황제국만이 가능하였는데
이렇게 황궁우 입구의 계단에 용이 있는 것은 조선이 대한제국으로써 한발 내딛었음을 의미한다.




가운데 문을 통해 보이는 황궁우는 많은 장식으로 꾸며진 팔각건물이다.
익공계 건물로 청의 영향을 많이 받아 복잡한 장식으로 지어졌다.

웨스턴조선호텔의 자리는
원래 태종 이방원의 둘째 딸인 경정공주가 살았던 곳이다. 세종대왕의 누이이다.
그후 선조 시대에 의안군이라는 왕족이 살면서 집을 남별궁(南別宮)이라고 불렀다.
남별궁은 인조 때에 태평관이 철폐되자 중국 사신들이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자란 말이옵니까?’라고 성화를 부리는 바람에 이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897년 고종이 황제에 오르는 것과 관련하여 하늘에 제사 드리기 위한 환구단을 축조할 때에 정리되었다.

나중에 조선총독부는 환구단도 못마땅하여 1914년 환구단을 허물고 그 자리에 조선철도호텔을 지었다.
조선철도호텔은 조선호텔의 전신이다. 조선호텔은 1968년에 옛 건물들을 허물고 새로 고층건물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환구단은 일제에 의하여 파괴되었지만 다행히 황궁우는 남게 되어 ‘이게 무얼까?’ 하면서
사람들이 기웃거리는 대상이 되었다. 웨스틴조선호텔의 황궁우 건물 앞 주차장 옆에는
돌북(石鼓) 세 개가 놓여 있다. 하늘에 제사 드릴 때 이용했던 의식용 북이다.




북의 옆면에는 용이 현란하게 조각되어 있다.
대단히 훌륭한 조각이다. 마치 살아 있는듯 하다.




황궁우
3층으로 된 팔각정이다. 이 일대에 축조되었던 환구단(圜丘壇)의 부속 건물이다.
환구단은 천자(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단이며
황궁우는 조선왕조 왕들의 신위판(神位版)을 모신 건물이다.

고종황제는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환구단을 설치하고 천신에게 이번에 황제가 되었다는 내용을 보고한 후에 황제의 위에 정식으로 올랐다.
원래의 환구단은 대단히 규모가 컸다. 환구단은 둥근 원형이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은 둥글게, 땅에 제사 지내는 단은 모나게 쌓았다.
이를 어려운 말로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고 한다.

환구단은 돌을 쌓아 올린 원형 넓은 제단이었다. 1층의 지름이 140m나 되었다.
환구단을 정성스럽게 쌓기 위해서 1천명의 인부들이 동원되었으며 거의 한달 동안 열심히 일해서 완성했다.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단을 쌓는 것이므로 1천명의 인원을 동원한 것이다.

황궁우에 대하여 한마디 더 하자면,
고종황제는 선조들은 그대로 두고 자기 혼자만 황제가 되는 것이 미안하여
조선의 다른 모든 왕들도 황제로 추대하자고 주장했지만 신하들이 그때는 대한제국이 아니고 조선왕국인데
모두 황제로 추존하면 남들이 웃는다고 하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다만, 태조 이성계만을 대표로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로 추존하여 황궁우에 진열한 신위판에 그렇게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만일 ‘태조고황제가 누구냐?’는 시험문제가 나온다면 ‘태조 이성계올시다’라고 공손히 대답하면 된다.
서울에 남아 있는 대한제국의 유일한 흔적은 조선호텔 안의 황궁우와 석고들이다.
내용출처:http://blog.daum.net/johnkchung/6823395




황궁우 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관람객들이 안을 들여다 보려고 문살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구멍들을 만들어 놓았군!




그 구멍으로 디카도 들이대고 또 들여다도 보고를 되풀이 했다.




황궁우의 내부 모습을 구멍으로나마 볼 수 있어 궁금증은 해소되었다.
누런 보자기가 씌워진 것이 고 황제를 모신 신위판들이다.




황궁우 관람을 마치고 나오다가 하늘에 제사 드릴 때 이용했던 의식용 돌북을 만난다.
위에서 거론했듯이
북의 옆면에는 용이 현란하게 조각되어 있다. 마치 살아 있는 듯  대단히 훌륭한 조각이다.




관람을 이번엔 속시원히 마치고 돌아 왔다.
관람에 빠져 잠시 잊고 있었던 샛노오란 봄이 방긋 미소로 반겨 주었다.
울 아파트 담벼락에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노오란 개나리야,
우리 봄노래 개나리를 함께 부르며 봄을 더 곱게 키울까?
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서울도심 빌딩숲과 조선호텔에 가리워져 쉽게 눈에 띄지 않는 환구단 시민공원에도
봄은 찾아 왔건만 일제로 인한 치욕적인 당시의 역사는 이곳에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유서깊은 역사의 현장 환구단을 둘러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져 옴은 비단 나 뿐일까?
그 가슴아픈 지난날의 상처를 발판삼아 그것을 에너지화 하여 더욱 강한 대한민국으로
국가 브랜드를 높여 어떤나라라도 감히 넘불 수 없는 으뜸나라로 성장 발전시켜야하겠습니다.

이번에 다시 다녀오면서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도움되시는 분도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길안내
지하철1호선 시청앞 하차 6번출구로 이동
-서울시청앞 잔디광장을 가로 질러 횡단보도 두번 건너면
-환구단시민공원 정문이 나옵니다.
-정문은 닫혀있고 그 옆길로 들어서서 계단으로 오르면 됩니다.
시청앞6번출구로 나오면 바로 좌측 건너편에 보입니다.






사진ㆍ글: 찬란한 빛/김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