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순간들

외규장각 도서 145년 만의 귀환

任演(임연) 2011. 5. 1. 17:57


 

◈ 외규장각 도서 145년 만의 귀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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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만◈ 외규장도서 145각 의 귀환 ◈


외규장각 도서 중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
(英祖貞純后嘉禮都監儀軌) 하권의 반차도(班次圖). 별군직,
전부고취와 전악, 봉촉, 그리고 무예별감 부분이다.

외규장각 도서 중 인조장열후가례도감의궤
(仁祖莊烈后嘉禮都監儀軌)상권의 반차도(班次圖).
혼백거 부분이다.

외규장각 도서 중 인조장열후가례도감의궤
(仁祖莊烈后嘉禮都監儀軌) 상권의 반차도(班次圖).
혼백거 부분이다
◎-반환 외규장각의 개요-◎
외규장각도서 :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돼 있던 
1,007종 5,067책의 서적과 문서
사건내용 :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반환
반환일정 : 1차 반환 2011년 4월 14일 (한국시간) ~ 2011년 5월말까지 4차례 분산 반환받음 일반인공개 : 7월 18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 예정
관련정보 : 조선왕조 왕실의궤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와
프랑스공화국 정부간 합의문 관련뉴스

-외규장각 도서 145년 만의 귀환- 
역사자 박병선 박사(사진) 佛서 첫 발견 
지속적인 이슈화… 박흥신, 반환협상 재시동 반환 주역들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297권 가운데 1차분 75권이 14일 귀국하기까지는
한국과 프랑스
양쪽에서 적잖은 인물들이 고비마다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들 도서의 존재를 처음 발견하고 반환을
이슈화한 주인공 은 프랑스국립도서관(BNF) 직원으로 근무했던
재프랑스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83).
그는 12일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에 서 특파원들과 만나“너무나 기쁘지만 ‘대여’를
하루빨리 반환 으로 바꿔야 한다 고말했다.
박 박사는 “프랑스 법 원도 외규장각을 약탈했다는 부분을 인정했는데 대여라는 형식으로 되돌려 받는다는게 말이되느냐”며 “
사람이 하는일인데 안 될 것이있겠느냐.
국민이 힘을 합쳐 반드시 반환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직장암 수술을 하고
회복 중인 그는 요즘 병인양요 정리 작업을 하고있다.
그는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아 일을할 때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것 이 힘들고 경비도 만만치 않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오랜 기간 교착상태에 빠졌던 외규장각 협상에 재시동을 건 사람은 박흥신 주프랑스 한국대사다. 박 대사는 13일“숙원이던 외규장각 도서의 국내 귀환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것 같아 자부심을 갖고 있다 며 협상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1993년 한-프랑스 정상 간 에 합의된‘상호 등가 대여’부분을
일방 대여로 바꾸도록 프랑스를 설득하는것이었다”고 회고했다. 2009년 12월 부임한 박 대사는 외규장각 도서 문제를 문화재 반환이 아닌 양국 관계 발전의 걸림돌 해소 차원에서 접근했다. 그는 “프랑스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프랑스 국익에도
저해가 된다고 강조했다 며 협상 초기 프랑스 측이 ‘외규장각을 한국에 돌려주면
(다른나라들도 문화재 인도를 요구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며 난색을 표명했지만
‘한국민에게는 민족의 혼이 담긴 것이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접근해 달라’ 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자크랑
전 문화부 장관이 협상 과정 내내 큰 도움을 줬다고 강조했다.
랑의원은 1989년 지휘자 정명훈 씨를 프랑스 국립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으로 초빙했던 친한파인사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을 직접 만나 여러 차례
도서 인도에 관한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규장각 실무협상을 진행한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의 유복렬 정무참사관도 숨은 주역으로 꼽힌다. 프랑스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1997년 외교부에 들어온 유 참사 관은 박 대사와 함께 프랑스 외교부의 폴 장오르티즈 아태 국장, 프레데리크 라플랑슈 동북아과장을 상대로 지난한 협상을 벌여왔다. 그는 “문화재 유출을 할 수 없는 프랑스 국내법상 반환이 아닌 대여로 우회해야 하는 문제는 국내 의 반발이 심해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는 데에만 4개월이 걸렸다 ”며“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코앞에 다가와서도 우리의 입장이 정해지지 않아 피를 말릴 지경이었다. 어려운 결정을 내려준 프랑스 정부에 감사한다”고 전했다. 장오르티즈 국장과 라플랑슈 과장은 등가 교환 대여가 아니면 안 된다고 강력히 반대해온 프랑스 문화부와 BNF 측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의 발전을 위해 결단 을 내려야한다고 사르코지 대통령을 막판까지 설득했다.

재불 사학자 박병선 박사
145년 만에 외규장각 의궤를 고국 품에

외규장각 도서 145년 만의 귀환에 즈음하여 이해를 돕기 위해 이의민

선생의 글을 첨부합니다

 도적이 주인노릇 하는세상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갔던
조선실록의궤(儀軌)등 규장각 도서가 145년 만
에 돌아왔다.도적이 도적질한 물건을 돌려주면
서 주인 노릇하며 대여하여 준다고 한다.
참으로 원통하고 분한 일이다.나라가 힘이 없어
강제로 빼앗아간 물건을 돌려 줘야 마땅한 것을
5년마다 자동갱신된다는 규장각 의궤는무엇인가.

1차분으로 들어오는 의궤75권엔 어람용(御覽用)
으로 임금이 볼수 있도록 고급스럽게 제작한 30
권과 유일본8권이 포함돼 있다.

의궤란? 국왕,왕비,세자의책봉,혼인이나 장례절
차,성곽건설등  조선왕실 각종행사를 그림 중심
으로 꼼꼼하게 기록한 문서를 말한다.
다양한 행사를 세밀하게 기록한 것으로 이와같은
문서는 세계의 유일한 보물이다. 국내에 있는 의
궤 가운데 서울대 규장각한국연구원에 소장된것
은 2940권, 한국 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490권이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지
정돼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번에 돌아오는 의궤는, 가례도감의제(嘉禮都監
儀軌), 존숭도감의궤(尊崇都監儀軌), 장례도감의
궤(葬禮都監儀軌), 천릉전원도감의궤(遷陵都監儀
軌),친경의궤(親耕儀軌),영정도감의궤(影幀都監
儀軌)등191중296권, 휘경원소 도감의궤는1993
년 이미 대여 형식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약탈해간 물건을 대여라는 명목으로 우리에게
돌아 오지만 하루빨리 대여에서 반환으로 바꾸
어야 한다.


                                  友美 이의민